솔직히 저는 거점동물원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까지, 각 동물원이 얼마나 고립된 환경에서 동물을 관리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이 동물, 우리 혼자 감당이 될까?"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우치동물원이 국가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돼 광주·전남 12개 기관과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그 답답함이 조금씩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협력체계, 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가
우치동물원은 지난해 6월 30일 국가 거점동물원으로 공식 지정됐습니다. 이 지정은 단순한 타이틀 부여가 아닙니다. 광주·전남·전북·제주를 아우르는 호남권역 25개 동물원에 대해 질병 관리, 긴급 구조·치료, 종 보전 프로그램 운영 등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역할이 법적으로 부여된 것입니다.
이번에 개최된 설명회에는 광주·전남 지역 민간·공영 동물원과 전남도 동물관련 기관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소박한 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이 자리가 갖는 의미를 조금 다르게 봅니다. 동물원 업계에서 기관 간 정보 공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을 사육하는 기관끼리도 서로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견학이나 교육 기회가 없으면 각자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구조가 이어집니다.
권역별 협력체계(Regional Cooperation Network)란 말 그대로 같은 지역 내 여러 기관이 자원과 정보를 나누는 구조를 뜻합니다. 개별 동물원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특히 희귀동물 진료나 멸종위기종 관리에서 이 구조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해외 사례를 봐도 명확합니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운영하는 종보존계획(SSP, Species Survival Plan)이 대표적인 예인데, SSP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기관이 번식과 개체 이동을 공동으로 조율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우치동물원의 거점 역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육동물 문제, 현장에서 보면 더 복잡합니다
이번 설명회에서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사육곰 현황 공유였습니다. 우치동물원은 현재 사육곰 4마리를 관리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2마리를 추가로 입식할 계획입니다. 사육곰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육곰이란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농가에서 사육해온 곰을 뜻합니다. 1981년 이후 정부 정책으로 사육이 허용됐다가, 동물복지 논란과 함께 전면 금지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면서 이 곰들의 향후 처우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우치동물원 진료팀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이 베트남 곰 보호센터 사례라는 점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베트남은 오래전부터 사육곰 문제를 겪었고, 동물보호단체와 협력해 대규모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Animals Asia Foundation). 이 모델을 참고해 사파리 방식의 사육곰 보호시설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는 점은 방향성 면에서 긍정적입니다. 다만 저는 현장 경험상 한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보호시설 규모를 늘리는 것과 그 안에서 곰의 행동복지(Behavioral Welfare), 즉 동물이 본래의 행동 레퍼토리를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거든요. 공간이 넓어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복지가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국내 사육곰 관련 정책 현황은 환경부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사육곰 농가는 수십 곳, 개체 수는 300마리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 숫자를 동물원들이 나눠 수용하거나 대형 보호시설을 새로 조성하는 것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치동물원이 선도적으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권역 내 다른 기관들과 역할 분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동물병원 시설이 말해주는 것
설명회 후 참석자들이 우치동물원 동물병원을 직접 견학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꽤 부러웠습니다. 수술실, 영상진단실, 이동식 X-ray와 초음파, 내시경, 혈액검사 장비까지 갖춘 시설이라면 사실 국내 웬만한 중소형 동물병원보다 스펙이 높습니다.
동물에게 이상 징후가 포착됐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정밀 진단 장비의 부재입니다. 영상진단(Imaging Diagnosis)이란 X-ray, 초음파, CT 등 의료 영상 기술을 통해 동물의 내부 상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진단 방법을 말합니다. 이게 없으면 외부 증상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특히 야생동물이나 대형 동물은 마취를 걸기도 쉽지 않아서 진단 자체가 지연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우치동물원이 이동식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현장 방문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점동물원으로서 가장 실질적인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설명회에서 우치동물원이 소개한 주요 기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문진료체계 구축: 수술실·영상진단실 등 하드웨어 기반의 의료 지원
- 멸종위기종 구조·보호: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개체 이송 및 치료 연계
- 종 보전 연구: 유전자 다양성 유지를 위한 번식 프로그램 공동 운영
- 동물복지 컨설팅: 사육 환경 점검 및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자문
- 시민 인식개선 활동: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동물원의 사회적 역할 확대
이 다섯 가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할 때 비로소 거점동물원이 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도 흔들립니다. 예컨대 진료 체계가 갖춰져 있어도 교육과 인식개선이 없으면 동물원이 단순 전시 시설로 머물 수밖에 없고, 반대로 캠페인만 있고 의료 인프라가 없으면 현장 위기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협력이 지속되려면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솔직히 이런 설명회 자리가 처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참여했던 교육이나 견학 행사들도 그 자리에서는 의미 있었지만, 이후에 실질적인 연계로 이어진 경우가 많지 않았거든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협력 구조로 정착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행동풍부화(Behavioral Enrichment)란 사육 동물이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도록 다양한 자극과 도전 과제를 제공하는 사육 기법을 말합니다. 이 분야는 특히 현장 경험의 축적이 중요한데, 같은 종이라도 시설 환경이나 개체 성격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이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사육해본 경험상, 다른 기관의 사례 하나가 몇 달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의 축적이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거점동물원을 통해 공유될 수 있다면 전체 권역의 사육 수준이 함께 올라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은 민간과 공영 동물원의 차이입니다. 공영 동물원은 지자체 예산을 받고 운영되는 반면, 민간 동물원은 수익 구조 안에서 복지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구조적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민간 기관의 참여 동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점동물원이 단순히 공영 동물원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민간 기관에도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네트워크로 설계돼야 협력이 지속 가능합니다. 제 경험상 이 점이 가장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국가 거점동물원은 어떤 기준으로 지정되나요?
A. 환경부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문 수의 인력, 진료 시설, 종 보전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지정합니다. 우치동물원은 2023년 6월 30일 호남권역 거점동물원으로 공식 지정됐으며, 광주·전남·전북·제주 등 25개 동물원을 대상으로 지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사육곰 전면 금지 정책이 시행되면 기존 사육곰은 어떻게 되나요?
A. 사육 신규 허가는 이미 금지된 상태이며, 기존 개체는 자연사할 때까지 현 농가에서 관리하거나 동물원·보호시설로 이송하는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우치동물원처럼 수용 역량을 갖춘 공공 기관이 단계적으로 개체를 인수해 보호하는 방향이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Q. 동물원 간 협력이 실제로 동물복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요?
A. 단일 기관이 보유할 수 있는 진료 장비나 사육 데이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희귀 질병 사례나 행동풍부화 기법 등 개별 기관이 축적하기 어려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실질적인 복지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멸종위기종처럼 사육 사례 자체가 적은 동물일수록 기관 간 데이터 공유의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Q. 사파리 방식 사육곰 보호시설이란 무엇인가요?
A. 좁은 우리 대신 넓은 자연형 공간에서 곰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보호시설을 말합니다. 베트남 곰 보호센터가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 동물이 본래의 행동 레퍼토리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 원칙입니다. 우치동물원은 현재 입식 경험을 바탕으로 이 방식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입니다.
Q. 민간 동물원도 거점동물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
A. 네, 이번 설명회에도 민간·공영 동물원이 함께 참석했으며, 거점동물원의 지원 대상에는 민간 기관도 포함됩니다. 다만 지원의 실효성이 민간 기관에 어느 정도 미치는지는 향후 운영 방식과 예산 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설명회가 단순한 보여주기 행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앞으로 정기적인 기술 교류와 공동 연구가 뒤따라야 합니다. 거점동물원의 역할이 행정 문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동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장 네트워크로 자리 잡길 기대합니다. 동물복지는 결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솔직하게 경험을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출발점이 여기서 시작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첫걸음입니다.
--- 참고: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