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흑비양의 귀여움 (귀여움의 진실, 동물복지, 애니멀톡 관련)

에버랜드 정문에 7미터짜리 흑비양 조형물이 들어섰습니다. 기사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저거 흑비양 인형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귀여움 뒤에 숨겨진 동물의 실제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생김새만큼이나 그 습성과 복지가 함께 주목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써봅니다.

귀여움의 진실 — 사진과 실물 사이의 간극

흑비양의 정식 명칭은 발레페이스양(Valais Blacknose Sheep)입니다. 스위스 발레 주 원산의 산악 품종으로, 흰 곱슬털과 까만 코·귀·발목의 대비가 인형을 연상시켜 전 세계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에버랜드에 등장한 '별', '구름', '하늘' 세 마리도 바로 이 품종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사진으로 보는 것과 현실은 꽤 다릅니다. 제가 처음 흑비양을 봤을 때, 예상과 달리 경계심이 상당히 강하다는 걸 바로 느꼈습니다. 인형처럼 생겼으니 당연히 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갑작스러운 소리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생긴건 귀엽게 생겼지만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이라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특성은 흑비양이 본래 알프스 고지대에서 눈과 바람을 견디며 진화한 품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인한 생존 본능이 외모와 정반대의 경계심으로 나타나는 것이였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접근하다가 동물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반응을 보이면 당황하는 관람객이 꽤 많습니다.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이 동물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흑비양의 모습

동물복지 — 귀여움이 인기가 될 때 놓치기 쉬운 것

에버랜드처럼 관람객이 동물과 가까이 만나는 공간은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방문객이 늘어날수록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동물복지(Animal Welfare)입니다. 동물복지란 동물이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행동적으로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개념입니다.

양은 군집성이 강한 동물입니다. 군집성이란 같은 종의 개체들이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려는 본능적 성향을 말합니다. 이 본능 때문에 사육 환경에서는 개체 간 서열 갈등이나 분리 불안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합니다. 저도 근무하면서 초식동물 중 새로운 개체가 합류했을 때 기존 무리가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단순히 먹이를 잘 먹는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 행동 변화와 개체 간 상호작용을 꾸준히 살피는 것이 사육사의 주된 업무입니다.

실제로 동물원 내 동물의 스트레스 지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동물의 5대 자유(Five Freedoms)'가 국제적으로 통용됩니다.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가 제시한 이 기준은 동물 복지 평가의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출처: RSPCA - Five Freedoms).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소음과 과도한 접근으로 이 기준들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인기 동물일수록 이 위험이 커집니다. 흑비양처럼 화제가 된 동물은 더욱 그렇습니다.

관람객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울타리 너머로 손을 뻗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행동은 동물에게 직접적인 스트레스 자극이 됩니다.
  2. 플래시 사진 촬영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동물이 등을 돌리거나 구석으로 이동하면 이미 충분히 불편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3. 먹이 주기 체험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임의로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소화 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금지가 당연합니다.
  4. 아이들이 흥분해서 뛰거나 소리치는 상황은 보호자가 미리 조율해 주는 것이 동물과 아이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애니멀톡 — 단순 구경에서 진짜 배움으로

이번에 에버랜드가 도입한 '애니멀톡(Animal Talk)' 프로그램은 솔직히 예상보다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니멀톡은 담당 사육사가 직접 나와 흑비양의 나선형 뿔 구조, 곱슬한 이중 털의 보온 기능, 군집 생활 습성 등을 하루 두 차례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해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양이 왜 저기 서 있어요?"라고 물을 때, "그냥 서 있는거에요"가 아니라 "무리에서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개체일 수 있어요"라고 답해 줄 수 있는 차이. 그게 동물원이 단순한 구경 공간을 넘어서 교육의 역할을 하는 순간입니다.

특히 흑비양의 나선형 뿔은 전문적으로 '나선각(螺旋角, spiral horn)'이라고 부릅니다. 나선각이란 뿔이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꼬이며 자라는 형태를 뜻하는데, 흑비양 수컷의 경우 이 뿔이 매우 뚜렷하게 발달합니다. 뿔의 성장 속도와 형태를 보면 개체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어 사육사들에게도 중요한 관찰 포인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관람객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분명 교육적 가치가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내용에 따르면, 국내 동물원은 단순 전시 기능을 넘어 교육·연구·보전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리 기준이 강화되고 있습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에버랜드의 애니멀톡이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콘텐츠가 단순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흑비양을 보러 에버랜드를 찾을 계획이 있으시다면, 조형물 앞 인증샷도 좋지만 애니멀톡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맞춰 가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동물은 전시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습성과 감정을 가진 생명이라는 것을 가장 크게 배웠습니다. 귀엽다는 감정이 출발점이 되는 것은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동물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때, 동물원이라는 공간의 역할도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www.sportsseoul.com/news/read/1607638?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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