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뉴스를 접하면서 이렇게까지 생각이 깊어진 적이 없었는데, 청주동물원이 국내 처음으로 맹금류 전문 비행 훈련장을 조성했다는 소식을 보고 나서는 꽤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히 시설 하나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친 독수리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기까지의 긴 과정을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동물원을 다시 보게 된 계기, 맹금류 재활의 현실
저도 처음엔 동물원을 아이들 데리고 동물 구경하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 손 잡고 갔던 기억, 그리고 나중엔 조카와 함께 갔던 기억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사례를 보면서 동물원의 역할이 제가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청주동물원은 국내 1호 거점 동물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거점 동물원이란 단순 전시 기능을 넘어 야생동물 구조·재활·종 보전을 공식적으로 담당하는 거점 역할을 하는 동물원을 말합니다. 전국 17개 야생동물구조센터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 단순한 관광 시설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실제로 이번에 비행 훈련을 시작한 독수리는 지난봄 울산에서 날개를 다친 채 발견된 개체입니다. 독수리는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된 맹금류입니다. 천연기념물이란 학술적·생태적 가치가 높아 국가가 법으로 보호하는 자연유산을 뜻하며, 이 독수리처럼 부상을 입은 개체는 함부로 방치하거나 처리할 수 없고 반드시 전문 기관의 보호와 재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이번 사례를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치료 이후입니다. 많은 분들이 "다치면 치료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맹금류는 치료 기간 동안 비행을 못 하면 인대(靭帶)가 손상됩니다. 인대란 뼈와 뼈를 연결하는 결합 조직으로,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고 비행 능력 자체에 영구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 우모(羽毛), 즉 깃털이 벽이나 구조물에 쓸려 손상되고, 이것이 다시 비행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국내 유일 비행 훈련장, 무엇이 다른가
제가 이번 소식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문 부분은 시설 규모였습니다. 새로 조성된 비행 훈련장의 횃대 높이가 25m에 달합니다. 아파트로 치면 8층 높이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넓은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야생에서 독수리가 활공(滑空)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활공이란 날갯짓 없이 기류를 타고 미끄러지듯 비행하는 방식으로, 독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의 주된 비행 형태입니다. 이 능력이 살아있어야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훈련 방식도 영리합니다. 높은 횃대에 독수리를 올려두고, 먹이를 아래에 배치해 스스로 활공해 내려오도록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의사와 사육사가 비행 능력 회복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충분한 비행 능력이 검증되어야 비로소 야생 방사(放飼)가 이루어집니다. 야생 방사란 재활을 마친 야생동물을 자연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독수리의 경우 겨울 철새이기 때문에, 북상 시기인 겨울이 올 때까지 이 훈련장에서 꾸준히 비행 능력을 끌어올리게 됩니다.
이런 시설이 지금까지 국내에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저는 더 놀라웠습니다. 맹금류는 몸집이 크고 비행 방식이 특수하기 때문에, 일반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시설로는 충분한 재활 훈련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전국에서 매년 구조되는 맹금류 개체 수를 생각하면, 지금 청주에 하나 생겼다는 것은 시작이지 충분한 수준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제 생각에도 분명히 아쉬운 대목입니다.
현재 이 훈련장이 담당하게 될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국 17개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이송된 천연기념물 맹금류의 전문 재활 훈련
- 25m 높이의 대형 횃대와 너른 활공장을 활용한 비행 능력 회복 훈련
- 수의사 주도의 비행 능력 검증 후 야생 방사 여부 결정
- 향후 참수리·독수리 등 대형 맹금류의 장기 재활 거점 기능 수행
국내 야생동물 보호와 관련한 법적 근거는 환경부 산하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담당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맹금류의 구조 및 보호 기준도 이 기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동물원의 역할 변화,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제 경험상 이런 이야기는 뉴스에서 한 번 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동물원이 단순한 관람 시설에서 종 보전(種保全) 기관으로 역할을 바꾸고 있다는 흐름이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시설과 인력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종 보전이란 특정 생물 종이 멸종하지 않도록 개체군을 유지하고 서식 환경을 보호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시민들이 이 변화를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저처럼 동물원을 단순히 구경하는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분들이 아직도 많을 겁니다. 그 인식 차이가 결국 예산과 정책 지원의 우선순위에도 영향을 줍니다. 동물원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시민들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재활 시설 확충이나 전문 인력 양성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도 만들어지기 쉬워집니다.
실제로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현대 동물원의 핵심 역할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 보전(Biodiversity Conservation)'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이란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 종과 그 서식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한 동물 복지를 넘어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개념입니다.(출처: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 WAZA) 청주동물원의 이번 비행 훈련장 조성은 그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움직임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이 시설이 청주 하나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재활 훈련을 마친 독수리가 몽골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장면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면, 뭔가 마음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시민 공개 재활 관찰 기회 같은 것들도 생겨난다면, 동물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주동물원의 이번 사례는 단순히 시설 하나가 생긴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친 독수리 한 마리가 다시 하늘을 날 수 있도록 국내 최초의 전문 훈련장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수의사와 사육사가 매일 붙어 있다는 것이 저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동물원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신다면, 이번에는 전시 동물이 아니라 재활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만큼, 이런 시설이 전국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 참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64953&re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