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물원으로 떠나는 서울대공원 사랑이의 사연 (유전적 다양성, 혈통 관리, 종 보전 관련)

동물원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던 동물이 갑자기 해외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은 분들이 먼저 "왜 외국에 줘버리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저도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서울대공원의 시베리아호랑이 '사랑'이가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동물원으로 떠난 이 일, 사실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치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별이 아니라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랑이는 2022년 4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로스토프와 어머니 펜자는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가 기증 의사를 밝혀 이듬해 한국에 온 호랑이입니다. 그렇게 외교의 선물로 온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이가, 이번에는 종 보전이라는 임무를 안고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이동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외부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복잡합니다. 이번 사랑이의 미국행은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의 글로벌 종관리계획(GSMP)에 따라 추진됐습니다. GSMP란 전 세계 동물원이 멸종위기종의 혈통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국제 조율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어떤 개체가 어느 기관과 번식 파트너를 이뤄야 유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지를 전 세계 단위로 조율하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종보전 프로그램(SSP)도 함께 작동했습니다. SSP란 특정 종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을 유지하기 위해 각 기관 간 번식 계획을 조율하는 미국 중심의 협력 프로그램입니다. 유전적 다양성이란 한 종의 개체군 내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조합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 다양성이 낮아지면 특정 질병이나 환경 변화에 집단 전체가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시베리아호랑이처럼 야생 개체 수가 500마리 이하로 추정되는 종에게 이 수치는 생존 자체를 좌우합니다.

혈통 관리의 험난한 과정

현장에서 동물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이동을 앞둔 동물을 준비시키는 과정은 상당히 고됩니다. 운송 상자(transport crate)에 미리 익숙해지도록 하는 크레이트 트레이닝(crate training)을 수개월에 걸쳐 진행해야 합니다. 크레이트 트레이닝이란 동물이 운송 용기를 낯선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들어가고 머무는 것을 반복 학습시키는 행동 조건화 과정입니다. 이 과정 없이 대형 고양이과 동물을 장거리 운송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서, 현장에서는 이 훈련에 가장 많은 공을 들입니다.

그때 느낀 건, 이 모든 준비가 결국 그 동물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한 줄짜리 뉴스 뒤에는 수개월의 크레이트 트레이닝, 반복적인 건강검진, 두 기관 수의사 간의 기록 공유, 검역 절차 협의 등 셀 수 없는 과정이 있습니다. 사랑이 한 마리의 이동을 위해 최소한 아래의 단계들이 필요합니다.

  1. WAZA와 AZA의 혈통 분석 및 파트너 기관 추천
  2. 수출입 허가 및 CITES(멸종위기종국제거래협약) 서류 준비 — CITES란 국제적으로 거래가 규제되는 야생 동식물의 이동에 적용되는 협약입니다
  3. 수개월에 걸친 크레이트 트레이닝
  4. 이동 전 종합 건강검진 및 기록 이관
  5. 항공 운송 중 수의사 동행 또는 24시간 모니터링 체계 가동

이 과정을 모르는 시민들이 "왜 우리 호랑이를 미국에 보내냐"고 의문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저는 그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물원이 이 과정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간극이라고 봅니다.

종 보전이 하나의 동물원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종 보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는데, 실제 현장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번식 쌍의 혈연 관계를 얼마나 멀게 유지하느냐입니다. 근친 번식(inbreeding)이 반복되면 면역 결핍이나 번식 능력 저하 같은 근친약세(inbreeding depression)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근친약세란 유전적으로 유사한 개체끼리 반복 교배할 때 생존율, 번식률, 면역력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시베리아호랑이, 학명 Panthera tigris altaica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된 종입니다. 야생에서의 개체 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동물원 내 개체군이 유전적 건강성을 유지하는 일은 단순한 번식을 넘어 야생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랑이가 콜럼버스 동물원에서 맺게 될 혈통 관계가, 언젠가 야생 개체군의 유전자 풀을 보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국내 동물원 간 협력 체계도 더 촘촘해져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해외 기관과의 교류만큼 국내 동물원 사이의 혈통 정보 공유와 번식 조율이 활성화된다면, 국제 이동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WAZA의 종관리계획은 각 대륙별, 국가별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한국도 단순히 국제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아니라 주도적인 참여 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랑이는 왜 하필 미국으로 보낸 건가요?

A. WAZA의 글로벌 종관리계획과 AZA의 종보전 프로그램(SSP)이 혈통 분석을 통해 사랑이와 가장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번식 파트너가 있는 기관을 추천한 결과입니다. 단순히 미국이라서 보낸 게 아니라, 전 세계 시베리아호랑이 혈통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파트너 기관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동물원이었던 것입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가장 먼 혈연의 개체와 번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Q. 시베리아호랑이는 야생에 몇 마리나 남아 있나요?

A. 현재 야생 개체 수는 500마리 이하로 추정됩니다. 러시아 극동 지역, 특히 연해주 일대에 주로 서식하며 중국 동북부에도 소수가 남아 있습니다. IUCN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어, 국제적 거래가 CITES 협약에 의해 엄격히 제한됩니다. 동물원 내 개체군의 유전적 건강성 유지가 야생 보전과 직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 동물 이동 전 어떤 준비를 하나요?

A. 크레이트 트레이닝이라 불리는 운송 상자 적응 훈련을 수개월에 걸쳐 진행하고, 건강검진과 기록 이관, CITES 서류 및 검역 절차를 모두 마쳐야 합니다. 대형 고양이과 동물은 스트레스 반응이 강해서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장거리 이동을 하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동 당일까지 사육사들이 행동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컨디션을 점검합니다.

Q. 사랑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나요?

A. 종 보전 프로그램 내에서는 개체의 이동이 지속적으로 조율되기 때문에, 향후 번식 계획에 따라 다시 국내로 돌아오거나 다른 기관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전적으로 혈통 관리 데이터에 따른 전문가 판단에 따라 결정됩니다. 동물의 복지와 유전적 필요성을 동시에 고려한 결정이기 때문에, 단순히 감정적으로 바랄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Q. 서울대공원에 시베리아호랑이가 아직 남아 있나요?

A. 사랑이의 부모인 로스토프와 펜자가 서울대공원에 남아 있습니다. 두 개체는 2011년 러시아에서 건너온 순수 시베리아호랑이로, 사랑이 외에도 다른 자손들이 국내외 기관과 연결된 혈통 관리 안에서 함께 기록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서울대공원은 국제 종 보전 프로그램의 참여 기관으로서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이의 미국행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국제 이동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현장에서 배운 한 가지는, 이런 이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가 새로운 곳에서 건강하게 적응하고, 언젠가 시베리아호랑이라는 종의 생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이 종 보전의 흐름에 작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현장을 지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참고: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260717/134319120/2 https://www.iucnredlist.org/species/15956/50659646 https://www.waza.org/priorities/conservation/species-conservation-protection-of-wild-fauna-flora/global-species-management-pl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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